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야마 사건 (문단 편집) === 나카타 요시에의 사망 === [[1963년]] [[5월 1일]] 나카타 요시에는 반 친구에게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라고 하면서 자신의 [[자전거]]를 타고 평소와 달리 조기 하교하였지만 사실 요시에의 집에서는 딸의 생일을 딱히 축하해 주려는 준비나 의도는 없었다고 한다. 이후 하교한 요시에는 학교 근처 [[우체국]]에서 [[1964 도쿄 올림픽]] 기념 [[우표]]를 예약했다. 오후 3시 20분경 요시에와는 잘 아는 사이인 주민 N씨는 학교로 가는 길과는 전혀 다른 방향인 [[세이부 철도]] 가드레일 쪽에서 요시에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을 봤다. 이때 N씨 이외에도 목격자 2명이 있었다. 이것이 요시에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 그들은 미처 몰랐다. 가족들은 오후 6시가 되도록 딸이 나타날 생각을 않자 걱정하였고 마침내 요시에의 [[오빠]](당시 25세)가 요시에를 찾으러 나섰다. 먼저 요시에의 오빠는 학교로 가서 동생이 어디로 갔는지 물었지만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수소문 이후 7시 반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요시에의 오빠는 문 틈 사이로 낀 편지 봉투를 발견했다. 봉투 안에는 아이를 살리고 싶거든 내일 [[자정]]에 돈 20만 엔을[* 2022년의 환율로는 한화 211만 원 정도인데 1963년의 물가를 감안하면 대략 2-3천만 만 원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내놓아라. 경찰과 이웃에게 알릴 경우 딸의 목숨은 없다.'는 협박편지가 들어 있었다. 협박편지를 읽고 오빠는 요시에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여 7시 50분에 호리가네 파출소에 신고했다. 파출소 측에서는 다시 사야마 경찰서에 연락해 협조를 요청했다. 사야마 경찰서 측에서는 유괴사건이라 판단하고 긴급수사체제를 편성했다. 이상하게도 범인(들)은 집안의 여자가 돈을 들고 올 것을 지시했는데 결국 요시에의 [[언니]](당시 23세)가 5월 2일, 밤 11시 40분에 경찰과 함께 [[위조지폐]] 20만 엔을 들고 협상 장소로 갔다. 협상 장소는 편지에 적힌 대로 '사노야'라는 술집의 문 앞이었는데 근처에 경찰관 40여 명이 잠복해 범인을 체포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만 '''사소한 실수 하나로''' 일이 꼬이고 말았다! 요시에의 언니가 범인을 기다리면서 경찰관과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그 광경을 그만 범인이 보고 만 것이다. 그자는 경찰이 잠복했음을 알아차리고 도주해 버렸다. 결국 경찰은 범인을 체포할 결정적인 기회를, 어쩌면 사건을 빨리 해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최고의 기회를 허무하게 놓쳐버리고 말았다. 협상이 결렬된 이후 더 이상 협박편지나 전화 따위는 없었다. 수사를 계속하던 경찰관들은 3일 새벽에 사노야에서 동남쪽에 위치한 밭에서 범인의 족적을 발견했다. 수사관은 경찰견을 앞세워 발자국의 뒤를 쫓게 했지만 오가와라는 곳 근처에서 더 이상 추적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경찰견이 멈춘 자리 바로 앞에는 양돈장이 보였다. 그 양돈장의 주인과 가족, 종업원들은 모두 사야마시 내의 [[부라쿠민]]들이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그 양돈장이 요시에가 학교를 갈 때 자주 이용했던 통학로 사이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아침 사이타마 현경은 이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아침부터 경찰관 45명과 현지의 소방단원 45명을 동원해 산속을 조사하는 한편 수사원 165명을 동원해 용의자들을 심문하였다. 사건 수사의 총지휘를 맡은 사이타마 현경의 본부장은 "사야마시에 거주하는 현지인"이 범인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가족들에게 범인을 조기에 검거하겠노라 굳게 약속했다. 나카 이사오 수사 본부장도 이 사건의 범인은 주변 지리에 밝은 인물이라며 사건을 조기에 해결하고 싶다는 욕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5월 4일 오전 10시경에 허무하게도 나카타 요시에는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실종된 지 사흘 만의 일이었다. 시신은 사야마시 이루마가와의 잡목림에서 보리밭으로 이어지는 농로(農路)에 암매장된 채로 발견되었다. 사이타마 현경의 의뢰로 나카타의 집에서 사법해부가 실시되었다. 법의학자들은 나카타 요시에의 시신을 정밀하게 부검한 결과를 발표했다. 우선 요시에의 [[사인]]은 경부 압박으로 인한 질식사로 판정되었다. 즉 목이 졸려 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요시에가 죽기 직전에 누군가와 [[성관계]]를 맺었다고 밝혀진 것이었다. 이쯤 되면 [[강간]]이 아닐까 의심되었지만 요시에가 저항한 흔적은 없었다. 요시에가 강간을 당했다고 보기에는 살짝 부족한 증거였지만 경찰 측은 소녀가 강간을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질 내에 [[사정(생물)|사정]]을 했는지 [[정액(체액)|정액]]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정액에서 검출된 [[혈액형]]은 B형이었다. 요시에의 위 안에는 반쯤 소화된 음식물이 약 250 mL 정도 남아 있었다. 법의학자들은 요시에가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고 약 2~3시간 이내에 살해되었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위 속에는 감자, 양파, 콩, 채소의 잎, 밥, 당근의 반소화물 외에도 토마토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후에 동급생이 법정에서 증언한 바에 따르면 피해자가 실종 당일 정오에 점심으로 먹었던 조리실습의 카레라이스에는 토마토가 없었다고 한다. 시신의 정황과 동급생의 증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의문이다. 그리고 요시에의 후두부에는 둔기로 가격당한 듯한 상처가 있었는데 살아 있을 때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는 소견이 나왔다. 배와 다리에는 무언가로 할퀸 상처가 있었다. 이로 볼 때 범인은 요시에를 유인해 성교를 한 뒤 둔기로 뒷머리를 때려 기절시키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추정할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